조은하루랑 님의 블로그

joy-today1 님의 블로그 입니다.

  • 2025. 4. 21.

    by. 조은하루랑

    목차

      1.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마치 비디오처럼 저장된 데이터를 되살리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 과학과 심리학은 오히려 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기억은 저장된 상태에서 꺼내 쓰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시 조립’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즉,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 맥락, 신념에 따라 재해석된 기억을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에피소드 기억(episodic memory)은 특히 이런 재구성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기억은 처음 저장될 때도 주관적인 필터를 거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왜곡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뇌는 비워진 부분을 추론이나 상상으로 ‘채워 넣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은 원래와는 점점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2. 뇌는 왜 기억을 왜곡하는가?

      기억의 왜곡은 일종의 ‘오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뇌가 생존과 정서적 안정을 위해 선택한 전략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뇌가 일부러 누락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각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트라우마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왜곡되는 현상은
      뇌의 방어 기제인 해마(hippocampus)와 편도체(amygdala) 간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편도체는 감정을, 해마는 사건의 맥락을 담당하는데,
      감정이 너무 강렬하면 해마의 작동이 억제되어 사건은 기억되지만 그 순서나 구체적 정보는 엉뚱하게 기록되기 쉽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을 편집합니다.
      이를 **자기 정당화 기억(self-justifying memory)**이라고 부르며,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성공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기억은 객관적 진실이 아닌,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이야기’로 재구성된 주관적 세계입니다.

       

      심리학

      3. 기억은 타인에 의해 쉽게 조작될 수 있다

      놀랍게도 기억은 타인의 말이나 질문 방식에 따라 쉽게 변형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연구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녀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차량 충돌 영상을 보여준 후,
      “차가 얼마나 빠르게 ‘부딪혔는지(hit)’”와 “얼마나 빠르게 ‘충돌했는지(smashed)’”를 묻는 질문을 다르게 했습니다.
      그 결과, ‘smashed’라는 단어를 들은 그룹은 더 큰 속도와 파손 정도를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죠.

      이처럼 언어의 선택만으로도 기억의 디테일이 조작되거나 추가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이는 법정 증언, 어린 시절 기억, 심지어 뉴스 소비 이후의 감정 기억까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허위 기억(false memory)’**이라고 부르며,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마치 실제로 겪은 일처럼 확신하게 만드는 일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기억조차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에 의해 재창조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4. 기억 왜곡을 줄이는 방법은 있을까?

      기억은 변하기 쉬운 만큼, 그 변화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기억이 절대적 진실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사건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
      타인과의 갈등에서 **‘진실의 싸움’이 아닌 ‘이해의 시도’**로 전환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록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일기나 음성 기록, 사진처럼 객관적인 흔적을 남겨두는 방법
      나중에 기억이 왜곡되었을 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억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기록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에서의 기억을 신중히 다루는 것입니다.
      극도의 분노, 슬픔, 불안 속에서 형성된 기억은 종종 왜곡된 각색이 개입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 감정을 잠재우고 나서 기억을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 결론: 우리의 기억은 진실일까, 해석일까?

      기억은 우리 삶의 연대기이자 정체성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억이 때로는 허위로, 왜곡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에게 큰 혼란을 안겨줍니다.
      내가 확신하는 기억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마치 바닥이 없는 심연을 마주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죠.

      하지만 기억의 유연성은 단점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기억이 그때그때 다르게 ‘편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펐던 기억을 나중에는 감사한 경험으로 되돌아보게 되고,
      실패의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전환점으로 재해석되기도 하죠.

      결국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가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심리적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을 ‘진실’로만 보지 말고,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감정과 정체성이 빚어낸 결과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억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특성이자,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기억이 언젠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동시에 위로가 됩니다.
      기억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있는 정서의 진실이 담겨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