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실패에 위로받는가? – 샤덴프로이데 탐구

1. 샤덴프로이데란 무엇인가 –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직역하면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겉으로는 공감하거나 걱정하는 척하지만, 내심 타인의 실패나 실수를 보며 왠지 모를 위안을 느낄 때 우리는 이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 단어가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실상 우리는 일상에서 이 감정을 자주 경험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인사가 넘어지는 장면에 웃는다거나,
SNS에서 지나치게 잘 나가던 사람이 구설에 오르면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해지는’ 감정이 대표적이죠.

심리학자들은 샤덴프로이데를 단순한 악의나 시기심으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 감정은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내면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심리적 기제로 이해되며,
사회적 비교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왜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서 안도감을 느끼는가?

샤덴프로이데는 특히 비교 심리가 작동할 때 더 강하게 발현됩니다.
SNS, 학교, 직장 등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내 실패처럼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실패는 내 상대적 위치를 회복시켜 주는 일종의 심리적 보상처럼 작용합니다.
즉, “그 사람도 결국 인간이었네”,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 같은 생각은
나의 무력감과 위축된 자존감을 잠시나마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또한 심리학에서는 이 감정을 자기방어적 기제로도 해석합니다.
타인의 불행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투심을 무마하고,
나의 불완전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면죄부’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자기 성장을 막고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차단하는 위험한 감정 패턴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3. 샤덴프로이데와 자존감의 은밀한 관계

샤덴프로이데는 자존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자존감이 일시적으로 낮아져 있거나, 외부 평가에 민감한 상태일수록 이 감정은 더 쉽게 발생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상대적 자존감 회복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며,
이는 타인의 위치가 낮아짐으로써 나의 자존감이 회복되는, 비교 기반의 자존감 조절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자존감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기준에 따른 성취와 만족에서 비롯됩니다.
샤덴프로이데에 의존한 자존감 회복은 일시적이며, 결국 자기 내면의 공허감을 더 크게 만드는 악순환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가?’를 인식하고,
그 감정의 뒤에 숨어 있는 자기감정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4. 우리는 왜 샤덴프로이데를 숨기려 하는가?

샤덴프로이데는 도덕적 기준과 충돌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감정을 느끼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불행에 웃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억압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통해 내가 지금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를 관찰하는 자기 인식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샤덴프로이데를 부정하지 않고 성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감정을 성숙한 자아 성장의 계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실패에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인식한 순간,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지쳐 있지?”, “나는 어떤 기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죠.

 

 

✅ 결론: ‘불편한 감정’ 뒤에 숨겨진 진짜 나를 마주하기

샤덴프로이데는 분명 불편한 감정입니다.
도덕적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이며, 때로는 우리 자신을 비열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죠.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쉽게 나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슬픔, 부끄러움과 환희, 연민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매일같이 경험하며 살아가니까요.

샤덴프로이데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쁜 감정도 괜찮다’는 위로를 넘어,
감정의 복합성과 인간 심리의 깊이를 인정하는 태도를 배우는 일입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자기 가치에 목말라 있는지,
또 얼마나 외부의 평가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때때로 얼마나 누군가의 실패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쳐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 위로받기도 하고, 때론 상대의 불행에서 희미한 안도를 느낍니다.
그 감정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감정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 더 깊은 자기 성찰로 나아갈 것인가입니다.

샤덴프로이데는 우리 안에 숨겨진 ‘비교와 결핍의 감정’을 드러내주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감정을 정리하고,
비교가 아닌 성장과 이해의 방식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건강하고 성숙한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실패 앞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면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어떤 위로가 필요했을까?”
그 질문의 대답이야말로,
당신의 감정이 당신에게 보내는 가장 솔직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